입찰 분쟁 사례 · 칼럼
발주처의 일방적 입찰공고 취소, 업체가 할 수 있는 법적 대응은?
조달청, 방사청, 한전, 한수원, 한국도로공사 등 공공 발주처들은 계약 체결 전 입찰공고를 나라장터, 국방전자조달 시스템, 혹은 한전 SRM과 같은 자체 시스템을 통해 공개합니다. 그런데 간혹 외부에서는 파악하기 어려운 내부 사정으로 인해 이미 공고된 입찰이 취소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저는 연간 수조 원 규모의 계약을 발주하는 기관의 법무실장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습니다. 재직 당시 계약담당 공무원들이 내부 사정을 이유로 입찰공고를 취소해야 하는 상황을 종종 접했고, 그때마다 관련 법령과 절차에 따라 합법적으로 공고를 취소하고 사업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업체 입장은 다릅니다. 특히 설계 비용까지 업체가 자체 부담해야 하는 일괄입찰·대안입찰의 경우, 예고 없는 갑작스러운 취소는 그간 투입한 시간과 비용을 전부 날리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낙찰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거나 이미 낙찰자로 선정된 이후라면 피해는 더욱 심각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법원 판례가 제시하는 법적 대응 방법이 있습니다. 아래에서 구체적으로 설명드리겠습니다.
1. 사건의 개요
1998년, 조달청은 “부산신항 준설토 투기장 호안(1공구) 및 기타공사” 입찰을 공고하면서, 지역제한 조건을 다음과 같이 명시했습니다.
“본사 소재지가 부산광역시·경상남도 이외에 있는 업체는, 가능한 한 2인 이상의 해당 지역 업체와 공동도급할 것”
그런데 수요기관인 해양수산부는 공동도급 업체의 본사 소재지를 ‘부산광역시 1개, 경상남도 1개’로 각각 지정해 줄 것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조달청이 이 요청을 받은 시점에 이미 적격심사대상자 선정이 완료된 상태였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조달청은 해양수산부의 요청을 수용하여 기존 입찰공고를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조건을 수정한 재공고를 진행했습니다. 이에 반발한 적격심사대상자들은 조달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재공고는 무효이며, 기존 입찰공고에 따라 적격심사 절차를 계속 진행하라”는 취지의 적격심사대상자 지위 확인 소송이었습니다. 해당 공사의 규모는 2,000억 원을 상회하여, 사건은 필연적으로 대법원까지 이어졌습니다.
2. 법원의 판단
1심 (서울지방법원 1999. 6. 3. 선고 99가합2688)
법원은 업체 측의 손을 들어주며 재공고의 효력을 부정했습니다.
“이 사건 입찰절차가 관계법령 및 세부기준에 따라 유효하게 개시되고, 입찰참가자들이 이미 입찰에 참가하여 응찰가격까지 공개된 이상, 참가자들은 계약 확정 시까지 나머지 절차가 법령에 따라 계속 진행되리라는 강한 신뢰를 갖게 된다. 이러한 신뢰와 기대는 국가계약법 및 신의칙에 의하여 보호되어야 할 법적 이익에 해당한다.”
2심 (서울고등법원 1999. 11. 30. 선고 99나35432)
2심도 같은 결론을 유지했습니다.
“조달청이 이 사건 입찰절차를 취소한 것은 관계법령에 반하여 효력이 없고, 이를 전제로 한 새로운 입찰공고 또한 효력이 없다.”
3심 (대법원 2000. 5. 12. 선고 2000다2429)
대법원 단계에서 조달청은 “소를 제기한 당사자가 2순위 적격심사대상자이므로 확인의 이익이 없다”고 다퉜습니다. 대법원은 이를 배척하며 다음과 같이 판시했습니다.
“제2순위 적격심사대상자는 제1순위 대상자가 부적격 판정을 받거나 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경우 적격심사를 받아 낙찰자 지위를 취득할 수 있으므로, 지위 확인 및 입찰취소·재공고 무효 확인을 구하는 소는 단순한 과거 법률관계의 확인에 불과하다고 볼 수 없다.”
결과적으로 적격심사대상자들은 1심부터 대법원까지 전부 승소했습니다.
결론
발주처가 입찰공고를 일방적으로 취소했더라도, 단순히 손실을 감수하고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낙찰 가능성이 있었다고 판단되는 경우라면, 위 판례를 근거로 발주처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검토해 볼 수 있습니다.